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텃밭을 일구다

“이곳은 서울의 난민들의 공간이에요. 26번째 자치구를 선포했죠. 저도 여기 구민이예요. 우리끼리 구청장도 뽑았어요.”

자본의 논리와 가진 자들의 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난 못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치와 연대 그리고 희망을 말하는 경의선 공유지 안에는 공공와 공유의 씨앗을 뿌리고 생명과 평등의 싹이 자라는 텃밭이 있다. 박신연숙 씨는 텃밭의 한 귀퉁이를 분양받아 아현동 주민들과 함께 경작하고 있다. 3평 남짓한 텃밭이지만 배추, 무, 상추, 시금치, 파, 콩, 아욱 등 있을 건 다 있는 풍성한 텃밭이다. 맨드라미와 해바라기도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여섯 그루의 콩 나무에 콩이 제법 많이 달려 수확량을 기대해 볼 만 했다.

박신연숙 씨가 촘촘히 자란 작물을 솎았다. 솎아낸 작물을 모아 놓으니 한 끼 식사를 너끈히 할 만한 양이 됐다.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들도 박신연숙 씨의 농사일에 흥미를 느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말을 건네니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졌다.

“어머! 콩이 많이 달렸네. 무슨 콩이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얻어서 심긴 했는데.”

박신연숙 씨는 자연과 교감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농사일이 즐겁다고 했다. 텃밭 한 구석에 생뚱맞게 있는 화분 뚜껑을 열더니 그 안에 흙을 뒤적였다. 바닥에 구멍이 뚤린 화분을 땅 속에 반쯤 묻어두고 그 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두면 땅 속의 지렁이가 와서 먹는다고 한다. 박신연숙 씨는 어딜 가나 지렁이를 키우며 자원순환을 한다. 동작구 시민단체 ‘좋은세상을만드는사람들’ 사무국장으로서 풀뿌리 활동에 전념할 때도 마을 화단마다 지렁이를 키우며 생명의 가치와 자원순환을 퍼뜨렸다. 지금은 ‘좋은세상을만드는사람들’의 활동을 내려놓고 마포구 아현동으로 이사를 와 평범한 마을살이를 하고 있다.

박신연숙 씨는 본업은 여성인권운동가이다. 오랫동안 ‘서울여성의전화’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풀뿌리여성네트워크 ‘바람’ 운영위원으로 있으며 지방정부의 사업과 정책을 여성의 관점에서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에 있을 때도, ‘좋은세살을만드는사람들’에서 활동할 때도 항상 풀뿌리 여성운동하면서도 도시농업이나 생태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그는 확신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요.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는 제 삶에서 보완적이에요.”

박신연숙 씨는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가 있고 사회적 잣대로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성주의”라고 말했다. 이어 “민초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풀뿌리 운동”이라며 “이 점에서 여성주의와 풀뿌리 운동은 만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자립하는 삶의 방법이 도시농업이다. 또한 도시농업은 도시와 자연을 잇는 실천이고 생활정치다.

“가사노동은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먹거리와 입을 거리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이잖아요. 가사노동을 여성들이 도맡아왔고 이런 가치들이 폄하돼 왔어요. 저도 지불되지 않는 노동을 왜 여성이 해야 되냐며 거부해 왔죠. 예전에는 정말 최소한으로 하려고 했거든요. 요리도 안하고 패스트푸드로 때웠죠.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 새롭게 가치정립을 했던 것 같아요. 가사노동은 내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저 역시 자본주의적 가치를 가지고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농사는 제가 스스로 자립하는 삶의 방법인 거예요. 그래서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오히려 더 내려고 했죠.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동을 더 즐기는 거죠.”

박신연숙씨는 ‘아현동사람들’이라는 주민 모임을 만들어 경의선 공유지와 아현동에 있는 지인의 주택 옥상 등에서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 ‘아현동사람들’은 아현동 주민들의 사랑방인 ‘행화탕’에서 시작됐다. 아현동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된 50년 된 목욕탕, ‘행화탕’을 청년문화예술가들이 의기투합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행화탕에서 직접 채소와 꽃을 키우고, 수확한 작물로 요리와 염색도 하는 강좌를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이 강좌가 끝나도 계속 만나자고 해 모임이 만들어졌다.

“흙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내내 수다떨어요. 먹을 거 가져와서 나눠먹기도 하고요. 한 달에 한번은 기획을 같이 해요. 건축가 한 분을 초대해서 아현동을 한 바퀴를 돌며 아현동의 옛날과 현재를 돌아보고 건축을 통해서 우리 동네를 이해했던 경험도 재밌었죠.”

박신연숙 씨는 텃밭과 정원을 생활 가까이에 두며 자연과 호흡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집 앞 복도에는 반 평 크기의 정원을 꾸며놨는데 이웃들이 찾아와 쉬고 가는 공간이 됐다, 지렁이 상자를 둬서 아이들이 놀러와 지렁이를 관찰하기도 한다. 차를 소유하지 않는 박신연숙 씨는 전에 살던 집 주차장을 텃밭으로 바꿔 배추와 무를 키웠다고 한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빈 화단이나 공터를 보면 혼자 씨를 뿌리기도 하고 사람들과 번개 모임을 만들어 꽃과 작물을 심으며 ‘게릴라 가드닝’을 실천한다.

“꼬마 정원사들을 불러 모으기도 해요. 지렁이를 키우고 화단을 가꾸다가 만난 동네 아이들이죠. 놀이터에 가면 만나요. 그 애들과 같이 꽃을 심어요. 조그만 플라스틱 숟가락을 가지고 다니는데 꽃을 심고 숟가락에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꽂아 놔요. 이 꽃은 너의 꽃이라는 의미로요.”

박신연숙 씨는 혼자가 아닌 늘 이웃들과 함께 한다. 마을에서 맺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 생태 감수성을 녹여내고, 자연과 마주하는 소소한 활동들을 만들어내며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의미를 스며들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고 작은 실천들이 이어지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쌓일 거라는 믿음에서다. 자신의 마을살이가 풀씨가 돼 모든 생명이 평등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고대하며 도시의 텃밭을 일군다.

“다양한 커뮤니티를 동네에 만들고 싶어요. 우리 동네에 이웃관계가 다양하게 형성되고 주민들이 그런 관계를 더 많이 경험하면 긍정적 변화가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