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소식 전체 (89)건

자연과 마주하는 텃밭 안에서 나는 마음의 휴식을 얻는다.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때로는 나의 고민과 푸념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주며 텃밭에 울려 퍼지는 좋아하는 음악도 함께 공유하는 사이 이기에 키우는 채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채소의 첫 수확은 항상 설레임을 가져다주었고 십 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도 그 설레임을 그대로 전해준다. 애호박을 처음으로 수확하던 날도 역시 그러했다. 당시에는 텃밭을 가꾸는 초보의 눈으로 아직 수확하기에는 작게만 보이는 애호박이 먹어도 되는 상태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키워볼까를 외치며 일주일 만에 찾아간 텃밭에는 수확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버린 애호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애호박은 개화한 후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수확가능하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수확 시기를 놓친 애호박은 그 속이 더 이상 자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씨앗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지만 애정으로 키운 애호박으로 전을 부쳐 맛있게 먹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판매되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재배되는 애호박을 주로 보다가 편안한 모양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자란 애호박은 자연이 주는 모양 그대를 유지하며 그 맛과 향 또한 한없이 싱그럽다. 처음에는 씨앗을 파종해서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집에서 직접 키우는 모종이 부족한 햇빛의 양으로 웃자라기만 하다 텃밭에 심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양이 많아져 최근 몇 년간은 씨앗이 아닌 모종을 사서 키웠다. 그런데 모종부터 키운 애호박은 파종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남았다. 그래서 3년전 쯤 이사한 현재 집은 햇빛이 충분히 비추어주니 내년에는 다시 씨앗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귀엽게 올라올 떡잎을 떠올리니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을 대표하는 채소 중 하나인 애호박은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착한 가격에 맛도 좋아 여름철 밥상에 찌개, 전, 무침 등의 요리로 자주 올라온다. 보통 호박은 저칼로리 식품으로 풍부한 섬유소와 비타민,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데 애호박은 특히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며 소화흡수가 잘 된다. 그래서 이번에 소개해 드릴 요리는 애호박을 면으로 활용한 애호박 누들 파스타이다. 더운 여름에 간단하면서도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채소 파스타이다. < 애호박 누들 파스타 > 레시피 재료 : 애호박 1개, 그린빈 2~3개, 방울토마토 6~7개, 올리브오일 2T,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1.애호박은 깨끗이 씻어 톱니필러로 자른 다음 소금을 살짝 뿌려 3분 정도 두었다가 수분이 나오면 물기를 제거하여 애호박 누들을 준비한다. 2.그린빈은 꼭지를 따서 씻은 후 소금물에 1~2분간 살짝 데친다. 3.방울토마토는 깨끗이 씻어 반으로 자른다. 4.접시에 애호박 누들, 방울토마토, 그린빈을 올리고 분량의 올리브오일을 골고루 뿌리고 소금, 후춧가루를 살짝 뿌려준다.   *박선홍 님은 9년차 도시농부로 네이버 블로그에  '요리하는 도시농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텃밭 에세이 <요리하는 도시농부>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8월 3일 | 요리하는 농부 박선홍

이 노래를 아시나요? “옥수수 나무 열매에, 하모니카가 들어 있네.” 네, 그렇습니다. 오늘은 옥수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8월 유명한 생물학 학술지인 Plos Biology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토종 옥수수의 질소 고정이 점액과 관련된 질소 고정 미생물 군집에 의해 지원된다>(https://journals.plos.org/plosbiology/article?id=10.1371/journal.pbio.2006352)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질소 고정 미생물은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지요? 콩과식물에 공생한다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그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소 고정 미생물이 콩과식물만이 아니라 옥수수에도 공생한다니요? 더구나 옥수수는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다비성 작물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다비성 작물에 질소 고정 공생균이 있어 이를 이용할 수 있다면, 비료의 필요를 대폭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농업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지요. 옥수수는 쌀과 밀, 그리고 감자와 더불어 세계의 식량을 책임지는 4대 작물로 꼽힙니다. 더구나 옥수수는 우리가 직접 섭취하는 것 말고도 대규모 축산에서 생산되는 동물성 단백질 대부분이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기반으로 하기도 하고, 바이오에탄올 같은 생물연료도 옥수수로 생산하는가 하면, 다양한 산업용 재료도 옥수수에서 비롯되어 엄청나게 중요한 작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예로는 아이들 식기도 옥수수를 이용해 만든 것이 있을 정도이지요. 이렇게 용도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재배면적도 광대하다는 뜻입니다. 2014년 자료를 보면 전 세계의 옥수수 재배면적이 1억7780만 헥타르에 달한다고 합니다. 헥타르로는 잘 감이 안 오신다면, 5334억 평으로 34평 아파트 약 157억 채에 해당하네요. 평수의 대소는 있지만, 한국의 아파트가 많아야 1000만 채 남짓이니 얼마나 드넓은 땅에서 옥수수가 재배되는지 감이 좀 오나요? 현재 인류는 유용한 옥수수를 드넓은 땅에서 재배하기 위해 많은 양의 비료, 특히 질소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질소 비료의 생산과 운송, 그리고 적용의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해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고, 토양에서 침출된 질소가 강과 호수, 바다로 흘러들어가 수질을 악화시키고 녹조와 적조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질소를 고정시키는 미생물과 공생하며 비료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의 옥수수를 육종하는 일은 과거 녹색혁명의 종자를 개발한 것에 비견될 만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원의 사용을 줄이거나 그 효율을 높이는 작물을 육종하는 일이 최신 경향이기도 합니다. 이 옥수수는 옥수수의 원산지로 지목되는 멕시코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멕시코 오악사카 주에 있는 산골 마을은 토톤테펙totontepec이 그곳이라 합니다. 1979년 이곳을 방문한 식물학자 토마스 분 홀버그Thomas Boone Hallberg 씨가 지역민들이 아무 거름도 없이 올로톤olotón이라 부르는 옥수수를 6m 높이로 키우는 걸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묻혀 있다가, 1992년 이곳을 재방문한 홀버그 씨와 그와 동행한 과학자들에 의해 다시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림 밭에서 올로톤 옥수수를 조사하는 멕시코 과학자의 모습. 사진: ALLEN VAN DEYNZE/UC DAVIS> 올로톤이란 옥수수의 특징은 줄기의 마디에서 공기 중으로 뻗어나오는 기근氣根이란 뿌리에서 나오는 점액에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이 기근에서 나오는 점액질에 공생하는 미생물이 대기 중의 질소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 특징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떤 과학자는 이를 “질소 고정 연구의 성배”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림2 기근에서 나오는 끈끈한 점액에 질소를 고정하는 미생물이 공생한다. 사진: ALAN BENNETT / UC DAVIS> 최근 인류는 기후 위기 문제라든지, 급증하는 인구를 자연환경의 훼손 없이 부양하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1970년대에 발견되었던 질소 고정 옥수수가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받는 건 그런 맥락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원의 이용 효율을 높여 낭비를 막고, 환경을 지키며, 생산성을 확보해야만 지속가능성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옥수수의 존재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인류의 공유 자산인 씨앗과 작물이란 유전자원을 독점하여 그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독식하는 일입니다. 씨앗은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일까요? 그렇다면 그러한 권리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현재의 사회 구조는 씨앗에 대한 특허와 독점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씨앗이란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수천 년 동안 농사지어 온 인류 모두의 공유자산입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올로톤이란 옥수수도 그러합니다. 멕시코 산간 지역의 토착민들이 수천 년 동안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맥락 속에서 지켜온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를 이용해 누군가 이익을 얻는다면 그 이익은 누구에게 어떻게 돌아가도록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현재 이 옥수수의 이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이리저리 얽혀 있다고 합니다. 엉킨 실타래를 풀 듯이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잘 풀리기를 기대합니다. 토톤테펙에 살고 있는 지역민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옥수수밭에 가서 놀면서 이 옥수수의 점액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 맛이 어떤 맛인지 궁금하네요.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2019년 8월 3일 | 김석기

세금의 크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의 ‘결부법’을 땅의 크기가 중심이 되는 중국의 ‘경묘법’으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토지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며 그를 뒷받침하는 정확한 토지 측량을 위한 척도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오늘은 풍석이 〈토지의 종류〉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정전(井田)’부터 시작한다. “평양의 정전을 예로부터 기자가 남긴 제도라 여겨 우리나라 토지제도의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이라 한다. 평양성의 기자정전(箕自井田)이 밭 전(田)자 형태이기에 은(殷)나라의 토지제도라는 구암 한백겸의 「정전도설(井田圖說)」과 그 후설을 쓴 허성의 주장을 옮긴다. 이어서 상세한 실측과 고증을 바탕으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남을 따라 설을 만들어서 “밭 전(田) 모양은 은(殷)나라 제도이고, 우물 정(井) 모양은 주(周)나라 제도이다”고 하니, 이것은 옛 제도의 큰 뜻을 더욱 놓치는 것”이라는 조부 서명응의 「기자외기(箕子外紀)」의 내용을 붙인다. 그리고 ‘주(周)나라의 정전은 기자에게서 나온 것’인데 “왜냐하면 기자가 전해준 ‘세상을 다스리는 9가지 큰 법’이 곧 정전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우임금이 ‘땅이 잘 다스려지도록 하고 하늘이 질서가 잡히도록 한 일’은 토목공사와 농지관리가 아닌 것이 없었다”라는 연암 박지원의 「기자전기(箕子田記)」를 인용한다. 조선은 공맹(孔孟)이래 최대의 유학자라는 남송(南宋)대 주자(朱子, 朱熹)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주자는 철학자이면서도 농촌사회, 농업 및 토지문제를 다루는 지방관료이기도 했다. 지주층에 의한 토지집중으로 농민층이 몰락하고 있었다. 지배층은 면역이 되면서 탈세도 하는 데 반하여 농민들에게만 세금이 부과되는 불공평한 부세제도의 귀결이었다. 농민들의 저항이 거세져 체제의 위기로 치닫는 현실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부세제도의 개선을 통해 사태를 수습한다 혹은 토지제도까지를 개혁한다라는 것으로 양분된다. 이상적인 토지제도로 고대의 정전제가 거론되었다. 맹자는 이미 정전제의 복구를 강조하였다. 사회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해서 정전제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렵다는 입장의 주자는, 토지를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불공평한 부세제도를 개선하고자 했다.(김용섭, 1985) 양란 이후 조선 후기의 현실문제도, 제시되는 해결방안도 남송대와 매우 비슷했다. 주자의 입장에 서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이었다. 신속이 『농가직설』을 증보하고 세종의 권농교문을 앞에 넣어 당시 집권세력의 우두머리인 우암에게 서문을 받고자 찾아갔는데, 주자의 권농문을 보탰으면 하는 우암의 의견에 따라 신속은 3개의 권농문을 합하여 1655년에 『농가집성』을 편찬한다. 우암은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일찍이 주부자(朱夫子)의 글을 즐겨 읽으니 그 넓고 크며 상세한 뜻을 감히 더불어 말할 수도 없도다.”(신속, 2004) 토지제도의 개혁을 주장하며 주자의 입장에 반대하는 인물은 우암과 동시대에 살았던 반계 유형원이었다. 반계의 사상은 나중에 실학파에게 연결되어진다. 조선에서도 정전제가 이상적인 토지제도로 받아 들였다. 『임원경제지』을 편찬하면서 관심분야에 대해서 자신의 주장이 담긴 글을 싣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씨앗을 심지 않은 옆 땅은 갈지 않고, 씨앗을 심을 곳은 지력을 다 쓰게’하는 ‘구전(區田)’에 대해 풍석은 자신의 농사경험을 덧붙인다. “가뭄을 구제하는 데 구전만한 것이 없다. 구전의 장점은 거름을 뿌리에 집중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미년(1811)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즈음 극심한 가뭄이 70일이나 지속되었다. 그러자 밭에 흩뿌린 기장·조·목화·콩·삼 등은 일절 싹이 나지 않았고 들판에는 푸른 풀이 거의 없었으나, 오직 구덩이에 씨앗을 심은 오이류와 목화는 이따금 싹이 돋아났다.” 고랑에 파종하고 매년 밭고랑의 자리를 바꾸는 ‘대전(代田)’에 대해 “밭을 가는 방법 가운데 대전보다 좋은 것은 없다. 대전이 평평한 땅에 흩어뿌리는 만전보다 나은 점” 5가지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역설한다. 대전법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견종법(畎種法)’으로 완성한 풍석은 『본리지』 제5권, 제6권 「파종과 가꾸기」에서도 강조하고 있기에 그 대목에 가서 다루도록 한다. 이어서 밭의 종류를 ‘위전(圍田)’, ‘가전(架田)’, ‘궤전(櫃田)’, ‘다락밭[梯田]’, ‘도전(塗田)’, ‘언전(堰田)’, ‘사전(沙田)’, ‘보전(洑田)’, ‘번전(反田)’, ‘화전(火田)’, ‘섬전(苫田)’ 등으로 설명한다. 그 중에서 섬전은 요즈음의 상자텃밭이다. 풍석이 직접 설명한다. “섬전은 밭에는 없는 밭이다. 싸리나무나 구기자나무를 엮어 바구니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곳에 똥재나 거름진 흙을 꽉 채우고 콩·삼·목화·가지·담배 등을 심는다. 마당의 가장자리에 이것을 두며, 저잣거리·골목·부엌·곳간·담장·울타리 등의 곁은 물론이고 햇볕이 잘드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토지제도로서 혁명적인 ‘정전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풍석은, 선진 농사기술로 판단하는 ‘구전’과 ‘대전’에 대해서는 역설하면서, 땅이 없거나 부족한 농민들에게는 이러저러한 땅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친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만을 주장하는 풍석은 확연히 다른 실학자들과는 다르다. “사람의 정성이 지극하면 수확도 배가 되니, 수십 개나 100여 개 섬전의 수확으로 한 사람의 1년치 양식을 제공할 수 있다. 대개 물이 많은 곳의 봉전과 땅에서의 섬전은 모두 밭이 없는 곳에서 밭이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이라며 「전제(田制)」를 마무리하는 풍석 서유구는, 도시에서 땅을 찾아 농사짓고자 분투하는 오늘날의 도시농부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참고문헌 김용섭(1985), 「주자의 토지론과 조선후기 유학」 『연세논총』 Vol.21 No.1 신속(2004), 『농가집성』, 고농서 국역총서 7, 농촌진흥청   김성철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 전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정책위원장'고농서연구모임'에서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2019년 7월 19일 | 김성철

풋거름이라 하면 많이 낯선가요? 그럼 綠肥라고 하면 어떤가요? 아, 한자가 더 낯설겠군요. 용어야 어떻든지, 농경지에서 자라고 있는 어떤 식물을 풋풋한 상태일 때 거름으로 이용한다고 하여 풋거름 또는 녹비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식물을 거름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무릇 거의 모든 식물은 후손을 잇기 직전에 식물체에 가장 양분이 풍부해진다고 합니다. 풋거름은 다분히 그러한 현상을 농사에 이용한 방식입니다. 과거 세종대왕의 명으로 지었다는 <농사직설>에도 “기름지지 못한 땅을 기름지게 하려면 녹두를 심어 무성하게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갈아엎어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풋거름을 활용하는 한 방법이지요.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농학자 가운데 일부는 조선의 조 또는 기장-밀 또는 보리-콩과 작물-휴한이라는 2년3작식 농법에 감탄한 적이 있지요. 이 방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2년째 겨울에 풋거름 작물을 재배하는 걸 추가할 수 있습니다. 땅을 놀리긴 놀리되, 더 효율적으로 놀리는 방식이지요. 어느 연구에 의하면, 풋거름 작물을 흙에 공급하면 매년 0.12%씩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미미한 수치일 수 있지만, 꾸준히 실행해서 해마다 축적되면 놀라운 변화와 효과가 일어날 겁니다. 세상 모든 일은 이처럼 꾸준하고 성실했을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풋거름이 토양에 들어가 하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해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과 또 하나는 토양에 질소를 공급해 미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토양을 살린다는 말은 식물의 직접적인 양분이 되는 원소를 잔뜩 넣는다는 게 아니라, 토양에 깃들어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토양의 구조와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돕는다는 것이죠. 이때 풋거름이 그 일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 풋거름 작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1) 콩과식물: 털갈퀴덩굴(헤어리베치), 자운영, 토끼풀, 살갈퀴 등 (2) 벼과식물: 보리, 호밀, 들묵새, 수단그라스, 트리티케일 등 (3) 야생식물 : 갈대, 갈퀴나물, 망초, 명아주, 쑥, 자귀풀, 자주황기 등 (4) 기타: 메밀, 해바라기, 유채(를 비롯한 십자화과) , 파셀리아, 코스모스 등 이 가운데 콩과식물을 질소질이 부족한 토양에 적합합니다. 그러니까 토양 검정을 통해 내 농경지의 흙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 다음 –물론 상농부는 그런 과학적 검사 없이도 자기 농경지의 상태를 잘 알테지만, 저는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질소질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를 보충할 수 있는 콩과식물을 풋거름 작물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토양에 유기물이 부족하거나 토양의 구조를 개선할 목적이라면 벼과식물, 질소나 인 같은 양분이 너무 넘친다는 결과가 나오면 십자화과식물을 선택해서 이용하면 됩니다. 어떤 풋거름 작물이 최고라고 할 수 없고, 모두 자기 농경지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마치 건강검진과 그에 따른 처방 같지요?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몇 가지 종류의 풋거름 작물을 섞어서 심은 뒤 그 성적을 비교하는 실험을 소개하며 마치겠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1) 토양의 질을 개선하는가, (2) 뒷그루 작물에 이로운가, (3) 비용은 적당한가. 이를 위해 (1)겨울 보리와 함께 무와 갓, 나머지 (2)귀리와 무 (3)귀리와 베치, 파셀리아 (4)귀리와 호밀 등은 각각 그 조합만 9월에 파종했습니다. (1)은 얕이갈이한 뒤 흩뿌림하고, (2)부터 (4)는 줄뿌림하는 방식으로 파종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풋거름 작물을 토양에 갈아엎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수확량; 생풀과 건조물 모두에서 귀리와 호밀이 가장 많은 수확량. 토양의 구조; 모든 실험밭에서 토양의 구조가 매우 좋아짐. 특히 귀리와 베치, 파셀리아를 심은 곳이 최고, 귀리와 무는 별로였지만 그것도 좋은 수준이었음. 지렁이; 지렁이의 개체 수는 무와 갓의 실험밭에서 가장 많음. 이 밭은 얕이갈이를 한 점에서, 무엇보다 경운을 최소화한 영향으로 보임.   실험 결과 얻은 각 풋거름 작물별 건조물의 수확량(왼쪽)과 지렁이의 중량 및 개체 수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흙 한 자밤의 우주>, 데이비드 W. 울프 지음, 염영록 옮김, 뿌리와 이파리 2. <땡큐 아메바>, 제프 로웬펠스 외 지음, 이현정 옮김, 시금치 3.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이완주 지음, 들녘 4.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5. <발밑의 혁명>,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6. <발밑의 미생물 몸속의 미생물>, 데이비드 몽고메리 외 지음, 권예리 옮김, 눌와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2019년 7월 19일 | 김석기

상상해 보셨나요? 꽃이 만발하여 작물과 어우러진 텃밭의 모습을. 꽃은 텃밭 농사에 이로운 생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걸 가꾸는 텃밭 농부에게도, 그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안겨 줍니다. 텃밭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도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텃밭의 모습에 감탄하며 좋아할 겁니다. 최근 도시의 텃밭이 개발 논리에 밀려 자꾸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 여러 꽃을 심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한다면 텃밭을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와 지지를 얻어내기에도 좋은 수단이 되겠지요. 텃밭의 꽃들에는 어떤 익충이 가장 많이 찾아올까요? 위의 그림에 나오는 조사에 의하면 기생성 말벌이라고 합니다. 텃밭의 작물을 먹어치우는 초식성 곤충의 애벌레에 자신의 알을 낳아 번식하는 곤충이지요. 이들은 평소 텃밭 주변의 꽃들에서 꽃가루와 꿀을 먹으며 지내다가, 번식을 할 때가 되면 텃밭의 작물에 살고 있는 해충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텃밭에 꽃이 다양하고 많을수록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도 좋아져 더 많은 개체가 살게 되지요. 텃밭에 여러 꽃이 만발하면 기생자 말고 포식자도 여럿 찾아오게 됩니다. 포식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편가(generalist)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가(specialist)입니다. 말 그대로 보편가는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한 해충을 잡아먹는 포식자를 뜻하고, 전문가는 특정한 먹이만 골라서 먹는 걸 가리킵니다. 보편가에는 풀잠자리, 집게벌레, 거미, 딱정벌레 등이 있고, 전문가에는 무당벌레, 꽃등에 등이 포함됩니다. 최근 농경지에 일부러 꽃을 심어 천적을 유인해 해충을 방제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한 결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에 들어와 트랩식물을 이용한 해충 방제법을 실험한 연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지만 아직 해외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인 것이 사실입니다. 생태계의 역학을 이용한 자연적인 방제법보다는 무언가를 만들어 뿌리는 쪽에 중점을 두고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쪽이 훨씬 쉽고, 빠르며, 돈이 되기에 그렇지 않은가 싶네요.   해외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30종의 두해살이 및 여러해살이 꽃을 심은 스위스의 사과 과수원에서 살충제를 쓰지 않고도 질경이둥글진딧물(Dysaphis plantaginea)의 피해가 몇 년 동안 경제적 한계선 이하로 상당히 감소. -20종의 한해살이, 두해살이, 여러해살이 꽃을 심은 벨기에의 사과 과수원에서 진딧물의 포식자 개체수가 증가하고, 질경이둥글진딧물의 피해는 살충제 없이도 몇 년 동안 경제적 한계선 이하였다. -프랑스에서 배나무이(Psylla pyrisuga)에 감염된 어린 배나무 근처에 길뚝개꽃, 수레국화, 공작국화 등이 있으면 2주 안에 감염률이 유의미하게 억제되었다. -프랑스의 사과 과수원에서 익충을 위한 꽃 두둑에 여러해살이 꽃을 심으니, 진딧물의 군집에 무당벌레와 꽃등에의 숫자가 약 60%까지 증가했다. (이상 <Perennial flower strips -a tool for improving pest control in fruit orchards> 참조) 텃밭의 꽃들에 찾아온 이로운 곤충을 위하여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생울타리를 심는 겁니다. 바람이 심한 곳이라면 바람막이 역할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찾아와 쉬거나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지요. 그리고 같은 이유로 굳이 농지로 이용하지 않는 공간에는 다양한 풀이 자라도록 허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벌이 벌집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곤충들이 숨거나 서식할 수 있는 돌무더기와 나무더미 등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새와 박쥐가 와서 살 수 있게 하는 장치도 좋겠네요. 이 모든 일들이 텃밭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구조를 더 풍부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조치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어떤 종류의 식물을 선택해서 심어야 더 효과가 좋을지 이야기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익충들을 텃밭으로 유인하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식물을 선정해 심어야 합니다. 천적들이 쉽게 접근해 먹을 수 있는 꿀과 꽃가루(짧은 꽃부리를 가진 식물)를 제공해야 합니다. 농사철보다 빨리 꽃이 피는 식물이 유리합니다. 농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천적을 지원하고 있어야 나중에 작물을 심었을 때 도움을 받기 쉽습니다. 농사철 내내 꽃이 계속 피도록 유지할 수 있는 식물을 심어야 합니다. 일찍부터 꽃이 피어 계속 피는 종류나, 아니면 조금 늦더라도 계속해서 꽃이 피는 종류를 선택해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적들이 텃밭에서 계속 머물며 우리의 농사를 도울 수 있지요. 꽃을 심는 게 좋다고 하여 해충이 유난히 좋아하는 걸 심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잘 검색하여 천적들이 좋아하는 걸 골라서 심도록 하세요. 크게 자라는 것보다는 작게 자라는 식물이 관리하기에 편합니다. 한해살이보다는 두해살이나 여러해살이가 더 좋습니다. 한해살이는 해마다 파종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말이죠. 꽃밭의 식물 군집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풀도 함께 자라게 하지만, 그들이 너무 우점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꽃과 풀의 비율이 2:8 또는 3:7 정도가 되도록 해야 좋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농사짓는 텃밭의 환경과 토양에 적합한 걸 골라 심어야 하겠지요. 그림1 텃밭의 꽃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천적의 비율. 기생성 말벌이 여기에서 발견되는 생물다양성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2곳의 과수원에서 3년에 걸쳐 평가함. 출처: Interreg TransBioFruit project 2008–2014). 그림2 기생성 말벌의 알을 가득 지고 있는 박각시나방의 애벌레. 출처: https://harvesttotable.com/parasitic-wasps-beneficial-insects/   그림3 진딧물이 있다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무당벌레.     그림4  농경지의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생태계의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조치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2019년 7월 4일 | 김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