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옥상에 도시의 미래가 있다

[텃밭 탐방] 파릇한절믄이의 옥상텃밭



예전에 ‘인류 멸망 그 후’라는 도발적인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다. 지구에서 인간이 사라진 후 도시와 지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인간이 없는 디스토피아가 다른 생명들의 유토피아로 변하는 광경을 보면서 ‘인간은 자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돼’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동시에 인간이 없는 도시의 변화상은 무척 흥미로웠다. 인류가 없는 도시의 고층빌딩을 덩굴식물이 휘감고, 옥상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며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찌그러진 알루미늄 캔 속에서 풀이 삐죽 자라고, 녹슨 자동차가 풀들의 땅이 되고,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건물 벽도 식물에게는 다소 자리기 불편한 땅일 뿐이었다. 다리도, 전봇대도, 빌딩도 자연적인 지형으로 변화해 갔다. 이건 고산식생, 해안식생처럼 ‘도시식생’이라고 불러야 하잖아! 도시 안에는 항상 자연이 잠재돼 있고, 때를 기다리고 있구나!

9월 29일 찾아간 마포구 도화동 ‘파릇한절믄이(이하 파절이)’의 옥상텃밭에서 작두콩 넝쿨 틈으로 주변 빌딩 숲을 바라보며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두콩 넝쿨 사이로 주변을 유심히 본 이유도 작두콩 넝쿨이 저 앞 빌딩을 휘감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어서였다. 자연이 도시를 뒤덮는 상상 말이다.



도시 청년 농부들의 비영리 커뮤니티 파절이는 도시의 옥상을 파릇하게 가꾸겠다는 꿈을 꾸며 2013년 옥상에서 텃밭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광흥창 어느 건물 옥상에 ‘공중텃밭’을 만들고 가꾸었는데, 작년 이곳 도화동 옥상으로 옮겨 그 꿈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 옥상텃밭은 노지텃밭과 다를 바가 없어요. 천혜의 공간을 구한 거죠.”

파절이 농사팀에 속해 있는 공지원 씨의 설명처럼 파절이 옥상텃밭은 노지텃밭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벽돌을 쌓아 올려 넓게 둘레를 치고 그 안에 가벼운 인공토가 아닌 진짜 흙을 채웠다. 벽돌을 높게 쌓아 올린 덕에 우엉처럼 뿌리가 긴 작물을 키우고도 남을 만큼 토심이 깊다. 게다가 텃밭 면적도 대략 200평이나 된다고 하니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옥상텃밭이다. 학교와 같은 공공건물에서나 이 정도의 규모의 옥상텃밭을 볼 수 있을까? 개인이 소유한 건물에 있다는 게 놀라웠다.

파절이는 텃밭 안에 나무틀로 구획을 나눠 작은 틀밭을 만들고, 개인분양 텃밭과 파절이 농사팀의 공동경작 텃밭을 병행하고 있다. 공동경작 텃밭에서는 홉 농사를 짓고 있었다. 도시농업을 문화콘텐츠로 해석하는 파절이 청년들이 맥주의 풍미를 더하는 홉을 키우기로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처럼 보였다. 파절이는 작년부터 수제맥주 전문점인 ‘어메이징 브루어리’와 협업으로 이곳에 홉을 키워 맥주를 만들었다. 작년에는 ‘파릇한IPA’라는 이름으로, 올해는 에일 맥주를 만들어서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도시농업의 문화콘텐츠를 확장하는 청년들의 상상력이 빛나고 있다.

파절이는 방아를 비롯해 라벤더, 타이 바질, 딜, 타임, 히비스커스, 아마란스 등 색다른 허브도 키우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도 파절이가 경작하는 텃밭이 있는데, 청보리를 심어 내년 봄에는 도심 옥상에서 멋진 청보리밭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개인분양 텃밭에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작두콩, 선비콩, 오이, 가지, 상추, 배추, 무, 파, 토마토, 공심채, 들깨 등 다채로운 밭작물들을 키우고 있었다.



올 해 여름은 무척 더웠다. 특히 옥상의 온도는 다른 어떤 곳보다 훨씬 뜨겁다. 열기 때문에 작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옥상텃밭에서 작물을 키우려면 더 많은 물과 거름이 필요하다. 즉, 투입하는 자원에 비해 효율이 낮은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파절이도 힘든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닐까?

공지원 씨는 “노지와 비슷해서 물을 많이 안 줘도 돼요. 더위도 잘 견뎌요. 비만 와주면 문제될 것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1m나 되는 깊은 토심과 자연의 흙, 넓은 면적 덕에 파절이는 큰 어려움이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옥상텃밭의 환경에 맞는 작물 선택과 농사법을 통해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더운 환경에서 잘 자라는 작물을 심고, 잘게 부순 나무껍질을 깔아줘 수분의 증발을 막았다. 파절이 파머스스쿨 최유리 강사는 “무엇을 키워도 되는 상황인데, 옥상 공간의 특성에 어울리는 아열대성 작물의 비중을 높였어요. 오크라나 바질, 공심채, 케일이나 루꼴라 등도 이런 환경에선 잘 자라요”라고 설명했다.

도화동 옥상텃밭으로 옮기고 농사 짓기 좋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파절이의 활동도 변화했다. 전에는 파절이 회원들 간의 문화 활동이 주였다면 현재는 경작 활동의 비중이 높아졌다.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파절이를 찾아오면서 ‘파머스 스쿨’도 열 수 있게 됐다. ‘파머스 스쿨’에서는 작물 재배법과 수확한 작물의 요리법 등을 익히고, GMO와 토종종자 운동과 같은 농업과 먹거리 문제까지 함께 고민한다.



파절이는 처음 옥상텃밭을 시작했던 광흥창 ‘공중정원’을 접고 우여곡절 끝에 작년 이곳으로 옮겼다. 공지원 씨는 이곳을 구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말했다. 임대료도 없고 텃밭환경도 좋다. 하지만 임대계약을 맺은 건 아니라서 이곳을 떠나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도심 내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지탱해주고 건강한 문화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도화동 옥상텃밭이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이 공간이 없었다면 파절이는 사라졌을 수도 있었어요. 이곳 말고 마포구에 이런 공간이 또 있을까요? 옥상텃밭이 활성화되려면 건물주에게 세금 감면과 같은 혜택을 줘야 해요. 도시 녹화에 기여했다는 공로상이라도 드려서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 조성된 파절이 옥상텃밭을 둘러보면 도시농업의 공간 자원으로써 옥상의 가치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방수나 하중, 관리의 어려움, 안전 문제 등으로 인한 제약도 있지만 옥상텃밭은 도시에서 부족한 경작공간을 확보할 수 도시농업의 대안이다. 또한 열섬이나 대기오염, 녹지부족 등 도시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시농업의 목표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건물을 녹화(綠化)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지 아닐까? 대안이자 목표,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점에서 옥상텃밭에는 도시농업의 본질적 요소가 있다. 도시농업이 옥상텃밭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한다.

도심 속에 자연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인류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파릇한 젊은 농부들이 보다 많은 옥상텃밭을 가꿀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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