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다양성을 가진 토종의 가치를 알아야

토종벼 280종을 심고 있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를 만나다


<다양한 토종벼들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들장이나 꽃장, 마들장을 가면 종종 ‘우보농장’ 팻말과 함께 토종벼 나눔을 하거나 판매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우보농장’은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증을 갖고 찾아가봤다. 8월 하순에 찾은 우보농장에는 가지각색의 토종벼들이 자기 나름의 색과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자리한 우보농장에서 이근이 대표를 만났다.


‘우보’는 말 그대로 소걸음이다. 이근이 대표가 농사를 처음 지을 때 만든 카페의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농사를 공동체부터 시작했다. 도시농부학교 1기생 2명과 셋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만들면서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공동체 방식으로 자급공동체로 농사를 지었다. 내 식탁의 재료들을 스스로 자급해서 먹자는 것이었다. 공동체도 여러방식이 있는데 농사비용과 노동도, 농자재도, 수입도 1/n로 하는 방식이었고 이런 방향으로 17년간 농사를 짓고 있다.


고양시는 약간 특수한 공간이다. 개발이 이뤄져 도시화가 되기도 하지만 그 개발을 빗나간 땅들도 존재한다. 투기든, 투자든 어떤 형식이든 사놓았지만 개발에서 빗나간 땅은 맹지나 농지가 많고 이 땅은 누군가 농사를 지어야 다시 되팔 때 세금을 적게 낸다. 그렇다고 소유자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기에 대신 지어 달라는 곳이 있다.


이 대표는 이런 땅들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동네는 100평, 다른 동네는 1200평짜리가 있기도 하다. 첫 해 200평에서 시작한 농사가 7년 후에는 13개 지역에서 1만5천평으로 확대될 정도로 커졌다. 새로 땅이 나오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초기 단계 세팅해서 그 땅에 ‘밭장’을 선임해 같이 일궜고 대부분 자급공동체나 작물공동체로 운영했다. 작물공동체는 구체적인 작물을 정해서 모이는 경우인데 마늘공동체, 고추공동체, 토종공동체, 김장 공동체 등으로 저장이나 가공을 할 수 있을 것을 많이 했다.


이런 활동은 2006년 시작해 2007년에는 온라인 네트워크도 활발히 만들어 ‘풍신난 도시농부’라는 카페도 운영했다. 카페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고 오프라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양시도시농업네트워크(이하 고도넷)’를 함께 만들었다. 그 후 도시농부학교도 하고, 농장도 함께 운영했다.


이 대표는 가장 의미있는 것은 ‘공동체 모델’을 통한 도시농업 활성화를 추구했고 귀농의 과도기로 귀농자를 양성하고 자급하는 틀을 갖는 도시농업이라는 방향의 설정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학교텃밭이나 청소년농부학교, 어린이농부학교 등의 교육에 힘을 쏟아야한다는 흐름도 존재했다. 이 두가지 방향성에서 고도넷은 많은 논의를 진행했고 이 대표는 고도넷의 대표직을 그만두고 나왔다.


이 대표는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고도넷의 가야할 방향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도시농부학교를 통해 도시농부를 양성해서 땅을 크게 만들어 자급해야 한다는 방향에서 아이들과 청소년 교육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대표직을 그만 뒀다. 교육도 소중한 일이지만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시농업의 모델은 다 같을 수 없다. 사고가 다를 수 있고,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기에 각자의 역할로 가는 것”이라고 담담이 전했다.


이 대표는 그 후 공동체 모델을 확장하고 안정적으로 할 곳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식계약을 통해 임대해서 얻은 곳이 ‘우보농장’이다. 그 전까지는 계약 없이 동의만 얻어 무상으로 농사를 짓는 게릴라 방식이었다. 현재의 우보농장은 도시농업공동체의 13개 지역의 본부역할을 하고 있다. 공동체 농장을 작물공동체 모델을 고추, 감자, 양파 , 마늘, 김장, 생강 공동체, 나중에는 벼와 관련한 논 공동체를 만들었다. 지금 우보농장에는 토종벼 280종이 심어져 있다. 가을로 접어드는 들판에는 검은색부터 붉은색까지 다양한 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사공동체는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농업 입문자분들은 5평 정도의 주말농장부터 시작하고 입채소 중심으로 한다. 그러다 농사에 빠져들면 땅이 더 필요하게 되고 우리 같은 사람이 땅을 확보해서 연결해주고 공동체로 함께 하게 된다. 이 과정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 도시에서 갖지 못하는 공동체성을 농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그냥 사람과 어울린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농사를 통한 공동체는 다르다. 도시의 직장은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한 곳이다. 삶 자체가 창조적으로 발현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경쟁하고 이기성을 가지는 삶이다.


하지만 농사는 철저하게 뿌린 만큼 거두고 그 안에서 다 같아진다. 목욕탕과 같다. 이념적인 것을 따지다가도 농사이야기로 돌아오면 논쟁이 없어지고 생명과 자연에 대한 끈끈한 이야기로 밤을 세운다. 이것이 공동체의 긍정적 모델이다.


농사공동체는 일반적으로 단체나 조직과는 다르다. 밥상을 같이하는 수준의 공동체다. 실질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경우 주말에 함께 일하기 위해 종자나 농자재, 비용 등을 같이 준비해야 하고 일하는 시간도 맞춰야한다. 작물 공동체는 시기별로 움직이면 되기 때문에 매 주 보진 않지만 서로가 집중해서 작물 하나를 위해서 땀을 흘리기 때문에 그 공동체 안에서는 끈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공동체는 한시적이고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한다. 그 공동체 하나가 평생 가는 것은 서로가 불가능하다. 새로운 공동체가 그 기간 안에 최대한 의미를 깨닫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손모내기가 사라지면서 농촌의 공동체붕괴가 사라진 것 같다. 기계화 된 것인데 다 석유와 전화로 일을 하게 된다. 기계중심이 되면서 논에 모일 일이 없고 서로가 아쉬운 것이 없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우보농장 같은 공동체는 손모내기를 한다. 도시농부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도시농부들이 경험하지 못한 쌀농사를 해보면서 그 안에서 공동체적인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려 한다. 그래서 2천 평 정도는 손모내기로 한다. 모내기 할 사람을 모집하고 1년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도시농부들이 벼농사 1년 프로그램 동안 4번의 모임을 갖는다. 처음에는 5가지 종류의 밥을 먹어보고 자기가 키울 벼를 고르게 되고 나중에 쌀로 가져가게 된다.


모내기나 벼베기는 부모나 친구들 모두 데려올 수 있게 한다. 신청은 40명인데 오는 사람은 200명이다. 그렇게 2천 평의 땅에 200명이 와서 모내기를 한다. 토종벼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시기가 지금(8월말)이다. 각각의 품종이 다른 모습으로 이삭이 패고 꽃이 핀다. 벼베기는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기 때문에 수확은 9월초부터 11월까지 2달 정도 진행된다.


토종에 관심


처음 시작한 5평의 농사가 점점 넒어져 고춧가루 등의 가공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러려면 더 많은 땅이 얻어 고추 공동체를 만들어 가공까지 진행한다. 그 다음은 김장 양념공동체, 그 다음은 곡식으로 관심이 넓어진다. 밥상의 메인은 ‘밥’이다. 내 손으로 벼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벼농사는 떠돌면서 불가능하기에 처음에는 3평 정도로만 만들었다. 그 시기 씨앗과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매력에 느껴 다른 작물도 채종해서 심었다. 그 때부터 토종씨앗 전시와 나눔을 많이 했다


논농사와 밭농사는 달라


그런 토종씨앗들 가운데 볍씨도 있었다. 토종볍씨! 그때 모아놓은 것이 30개 품종이었다. 볍씨를 10~50알씩 모아 논 3평에 30품종을 심어 3kg을 채종했다. 3천 평을 심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 다음해에는 1200평을 심었다. 그 다음해에 장항동과 구산동의 논에서도 재배했다. 논농사는 밭농사와 페러다임이 다르다. 한사람이 올인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물관리와 논뚝 관리를 위해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데 도시농부들이 할 수 없는 구조다. 결국 농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고, 모내기나 벼베기 등 주요한 시점에만 도시농부들과 함께 한다.


토종 30품종을 심었을 때 모두 다른 모델과 색깔이 연출됐다. 볍씨로만 보면 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데 이름이 달랐다. 왜 그 이름인지 몰랐는데 청년기의 벼와 벼꽃을 보고 그 이름들이 이해가 됐다.  이렇게 다양한 벼가 존재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빠져들게 됐다.


초기 30종에서 50종, 80종, 150종, 현재는 280종으로 늘어났고 4,000평을 운영하고 있다. 토종벼는 기본적으로 야생성이 강해 화학비료는 최악이다. 비료를 과하게 흡수해서 대부분 쓰러져 화학비료를 쓸 수 없는 농사라 전통농법을 중요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종자는 역사성을 가져


처음에 토종벼를 한 것은 사명감을 가지고 좋아서 한 것이 아니다. 키우는 품종이 많아지고 종자를 보존하니까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종자는 굉장한 역사성을 가진다. 토종이라고 불리는 것은 수 백 년, 수 천 년의 DNA가 들어있다. 그 작은 종자에는 긴 역사성이 남아 고정화 되어 담겨 있다. 밭작물 토종의 경우 자급의 차원에서 할머니들이 지켜왔고 이것을 씨드림이나 씨앗도서관에서 수집해왔다. 그런데 벼는 그런 수집이 불가능할 정도로 없다. 전통적으로는 자신의 벼를 육종해서 키웠는데 일제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씨가 말랐다.


처음에 토종벼는 단체들이나 농업진흥청에서 가져왔고, 흙살림에서도 받은 것이 있다. 그 이후 유전자원센터에서 120종을 받아 키우고 있다. 농업진흥청 산하의 유전자원센터에서는 종자들이 박제화되어 냉장고에 들어있다. 올해 받아 키우는 것들은 거의 100년 만에 싹을 틔우는게 아닌가 싶다.


1451450종으로 줄어


1910년 시점에 일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토종벼는 1451종이 재배됐다. 이건 지역마다, 동마다 종이 달랐다는 것이다. 종자를 보급한 것이 아니라 농민 스스로 육종해서 고정화 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는 빠른 근대화로 벼 품종개량, 탈곡과 도정 기술도입이 빨랐고, 다수확 품종을 우리나라에 도입시켰다. 그와 함께 흥남에 큰 화학비료공장을 만들었다. 화학비료와 개량화된 품종으로 다수확 체계로 만들면서 토종벼가 우리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 과정으로 품종은 450개로 줄어들었다.


그 이후에 박정희는 식량자급이 더딘 것을 극복하고자 통일벼를 연구해 보급했다. 통일벼는 인디카계열(동남아)과 자포니카계열(한국,일본에서 주로 키우는 계열)을 혼합해 맛과 수량을 채웠지만 병충해에 취약했고,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당시 농촌지도청에서는 다른 품종을 심으면 모판을 엎어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경기 북부 지역에서는 이 벼들이 냉해를 심하게 앓았고, 그래서 아끼바리 품종을 많이 심었다. 당시 농업계에 우리 품종과 토종벼에 대한 인식이 없다보니 통일벼에서 자포니카 계열로 다시 바뀌는 시기에 일본 품종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남한 품종이 일본품종으로 다시 일색화 됐다. 지금 우리 품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에는 일본 품종이다.


도시민들이 쌀과 벼의 민낯을 알아야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23년까지 우리쌀로 개량하겠다지만 원종은 일본품종에 두고 있다. 이 모습이 우리가 먹는 밥과 쌀의 모습이다. 토착왜구가 일본에 물들어있는 지금 우리 정치상황과 비슷하다.


우리 쌀과 벼의 이런 민낯을 도시민들도 알아야한다. 단순히 개량한다고 우리 품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농부들도 밥과 쌀의 품종에 대한 문제를 거론해야한다.


토종이 확대가 되어야하는가?


그런 문제보다는 토종의 가치를 알아야한다. 그건 유전적 다양성이다. 토종마다 가진 고유성에 맞게 농사를 짓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는 것이 1차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식량수급을 위한 개량종이 필요하다면 토종의 유전적인 것을 분석해서 활용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450종은 각각 장단점이 있고 그 극성을 모아 활용해야 다양성을 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에서 우선 토종을 재배하고 모아야한다. 국가 채종포를 만들어 품종별로 쌀과 밥으로 나와야한다. 종자를 보전 할 목적이 아니라 먹어봐야 하고 맛 평가를 받아야한다. 그 다양성이 존중된다면 개량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양으로만 본다면 지금의 쌀보다 2~3배의 수확하는 토종 품종도 있다. 개량종이 평균 120~150개의 낟알이 달리는데 ‘흰배벼’라는 품종은 350~400개가 달린다.


벼의 키가 작다는 문제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학비료는 땅을 산성화시키고 미생물을 죽이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화학비료로 농사짓는 논농사를 바꿔야한다. 땅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도시농업의 가치며 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유기농 벼가 얼마나 되는가?


세계토종벼대회 하고파


이 후에도 공동체 텃밭은 곡식위주로 가려고 한다. 밀, 보리, 호밀, 콩으로 도시농부들과 결합해 나갈 것이다. 벼와 관련해서는 인디키와 자포니카를 포함해 ‘세계토종벼대회’를 했으면 좋겠다 . 일본에도 저처럼 농사짓는 분이 있고 인도에는 1000종에 달하는 벼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이런 벼들을 한국으로 들여와 전시하고, 쌀의 문화와 의미를 확인하고 쌀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술의 문화를 나눴으면 좋겠다. 올해로 4회를 맞는 토종벼대회가 12월 초에 열리는데 이번에는 심포지엄도 진행할 예정이다.


전환기의 도시농업에게


도시농업을 도시민의 이기성과 사유화로 접근하거나 자기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지 않았으면 한다. 거기에 메이지 않도록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만들기를 바란다. 단체들은 공동체 텃밭을 만들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갈수록 개별화 되는 도시에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내가 먹는 것이 어디로부터 오고 어떤 씨앗인지 알고 먹으면 좋겠다.


‘공동체모델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사회적농업의 전형적이 모델이라고 본다. 지역단위의 전형적인 모델을 발표하고 이야기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특히 도시농업의 농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유기순환, 퇴지자원화, 똥을 어떻게 자원할 할 것인가 등도 연구 과제다. 공동체와 유기순환 농법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이성호 기자


gbear8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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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mass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가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 말씀드리려 합니다
1. 농업진흥청 이 아니라 농촌진흥청 이 아닌지요?
2. 1910년 조사에 의하면 토종벼 1451종이 재배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1451가지의 토종벼 이름이 확인된 것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