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잡록] 논밭에도 다양성이 필요하다

얼마 전, 아주 충격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인구 증가와 경제 활동 등으로 인해 자연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지구의 동물과 식물 100만 종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지요.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92900.html

지난번 글에서 우리 인간이 생산성을 위해 식물을 길들여 온 방법을 살펴보았는데, 그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소홀히 넘길 수 없습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를 부양하기 위하여 생산성이 높은 작물을 개발할 필요가 생겼고, 인간은 과학기술을 이용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는 것과 비견될 수 있게, 바로 논밭에서 다양한 품종의 작물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죠.

논밭에서 작물의 다양성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논밭에 작물이 다양하면 그를 선호하는 갖가지 미생물이나 곤충이 찾아오고, 그러면 또 그러한 미생물이나 곤충을 먹이로 삼는 생물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논밭에서 제한된 몇 가지 생물, 즉 작물만 살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만큼 논밭의 다양성이 낮아지고 다양성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여러 생태계 서비스도 사라지게 되죠. 그래서 근대 산업사회를 생산성의 최대화를 위해 균일성을 실현한 시대라고 정의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그보다는 최대한 다양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논밭에서 다양성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예전부터 활용되던 사이짓기, 섞어짓기 같은 농법이 그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농법은 한마디로, 한정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다양한 작물이 함께 재배될 수 있도록 실행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밭에 고추도 자라지만 들깨도 있고, 대파도 함께 자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섞어서 재배하면 고추에 몰리는 해충을 들깨와 대파의 향이 쫓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지요. 또한 옥수수가 자라는 옆에 덩굴콩을 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거름이 많이 필요한 옥수수의 요구를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이 있는 콩이 보완해 줄 수 있다고 하여 옛날부터 많이 이용되던 방식이었습니다.

(가)                                 (나)



<그림 농업생태계에서 알파 다양성과 베타 다양성. Stephen R. Gliessman, <Agroecology>, CRC Press, 2015. 207쪽에서 인용.>

 

자,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와 같은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두 그림 모두 똑같이 세 가지 작물을 사이짓기 또는 섞어짓기로 재배하는 모습입니다. 각각의 작물을 개별적인 두둑에 심는 것이나, 한 두둑에 한꺼번에 심는 것이나 세 가지 작물을 심는다는 내용은 같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네모 칸 안만 보면 한 가지 작물만 들어 있는 (가)보다 (나) 쪽의 다양성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농지의 전체에서 보자면, (가) 쪽의 다양성도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더욱 넓은 농지에 작물을 심더라도 왼쪽과 같이 여러 작물을 배치하여 재배하면 작물의 다양성도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관리의 용이성까지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실제 농업 현장에서 섞어짓기나 사이짓기가 기피되는 이유 중 하나는 관리의 복잡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물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한 번이면 될 일을 두 번, 세 번 해야 하게 되지요. 그런데 (가)처럼 여러 작물을 배치하여 관리한다면 그러한 수고를 덜 수도 있을 겁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논밭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텃밭 수준에서는 한정된 면적 때문에 한 두둑에 여러 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어 자연히 사이짓기, 섞어짓기가 적용될 수 있겠지만, 좀 더 규모가 큰 농장 수준에서는 두둑별로 각각의 작물을 심어서 다양성을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실제로 서구의 유기농 농장을 보면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 곳이 많이 보입니다. 처음엔 그 모습을 보며 땅덩어리가 넓어서 저렇게 농사짓는가 했는데, 이러한 원리를 실천하느라 그러는 것 같습니다. 유기농가라고 해도 논밭의 모습이 소수의 작물로 가득한 관행농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할 만합니다.



그림 괴산 지역에서 만난 전형적인 소농의 밭. 콩 사이사이에 옥수수를, 그 가장자리에 비수수를 심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다양한 작물이 함께 자라는 텃밭의 모습.

 

 



그림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 효과가 입증된 Push-Pull 농법. 옥수수 사이사이에 그 해충인 선충과 조명나방 등을 쫓는(push) 식물을 심고, 가장자리에는 해충들을 유인하는(pull) 사료작물을 심어 다양성을 이용해 옥수수의 수확량을 높이는 농법이다.

 

[농사잡록]은 김석기 선생님의 연재코너입니다. 강희맹 선생의 [금양잡록]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농사와 관련된 잡다한 기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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