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古) 농서를 소개] 임원경제지(서유구)

[고(古) 농서를 소개] 임원경제지(서유구)



2017년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던 날부터 고농서 공부모임을 시작하고 벌써 2년이 지났다. 첫 시작 공부는 세계 최초의 농업서적으로서 기원전 1세기에 범승지라는 사람이 쓴 중국의 범승지서氾勝之書였다. 그리고 바로 조선 최초의 농서로서 세종대왕이 국책으로 발행한 농사직설(1429, 정초)을 거쳐, 세조 때 정승을 지내다 은퇴 후 고향인 금양(지금의 경기도 시흥)으로 내려와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衿陽雜錄)을 읽고, 절기별로 농사 일정을 정리한 농가월령(1590, 고상안) 강독 후 지금은 풍석 서유구 선생이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842)의 첫 번째인 본리지의 토양편을 읽고 있다.

16개 분야로 쓰여있어 임원십육지라고도 하는 임원경제지는 총 113권 5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백과사전이라 할 정도로 농업서적이 제일 비중이 많아 전체 16지 중 다섯 개 정도나 된다. 그 중 첫 번째 지인 본리지가 28권으로 되어 있는 의술 책 인제지 다음으로 많은 13권으로 되어 있다.

서유구 선생은 고향이 경기도 파주로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유명한 실사구시 학맥의 소론집안에 속했다. 또한 정조대왕이 정약용, 김조순과 함께 당대 조선 3대 천재로 칭송해 마지않은 정승이자 학자였는데 은퇴 후 고향에 칩거하며 아들과 함께 36년에 걸쳐 쓴 게 임원경제지다. 책의 방대한 분량에도 놀랍지만 아주 세세한 실사구시 정신이 놀랍다. 음식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는 정조지에는 선생의 형수가 쓴 가정학 책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없는 조리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직접 해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내용이라 한다. 내로라하는 양반 가문의 대 학자가 직접 부엌을 드나들며 요리를 해보고 썼다는 것이니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의술 책인 인제지는 분량만으로는 동의보감 책을 능가한다. 동의보감은 허준이 썼다지만 개인이 다 쓴 게 아닌 국책 사업의 집단창작이라면 인제지는 아들과 둘이서만 쓴 개인 저작일뿐더러 내용면에서도 못지않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저작이라 평가 받는다.

그렇지만 지주 집안의 지식인 주제에서 농사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당시는 농경 사회라 소작료를 많이 거둬들여 부를 축적하려 했던 지주의 관점에서 농서를 집필하지 않았겠는가 라는 의문을 나는 솔직히 지을 수 없었다. 설령 진정성 있는 관점을 가졌다 해도 피땀으로 농사를 짓는 백성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그런데 꼼꼼히 책을 읽고 나가면서 그런 의문들이 우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지주 입장에선 통제하기 힘든 산 속의 화전을 높게 평가한 점이나, 수리시설로 강이나 하천보다 실핏줄 같은 논과 밭의 도랑을 중요하게 강조한 점, 요즘으로 말하면 상자텃밭처럼 땅이 모자라 가마니 섬에 흙을 담아 농사짓는 섬전을 소개하고 있는 점 등이다. 이 외에도 곳곳에서 백성을 진정성 있게 배려하는 대목을 말뿐이 아닌 구체적인 농사기술 소개에서 느낄 수 있는 게 적지 않다.

방대한 분량의 의미있는 내용과 진정성 있는 철학이 담겨진 이 책은 애석하게도 당대에는 출간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 4권만 남아있다가 최근에 와서 젊은 한학자들에 의해 헌신적으로 십여년 넘게 번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009년 첫 번째 지인 본리지 출간 후 2017년 건축 분야인 섬용지와 독서 및 음악 분야인 유예지가 번역 출간되었다. 한글 번역작업 또한 원작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다. 지금은 나라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초기엔 개인 독지가의 헌신적인 후원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제대로 된 번역을 위해 서유구 선생의 고향인 파주로 귀농하고 번역 연구소도 그곳으로 자리잡은 역자들의 진정성도 울림을 주는 사연들이다. 그 외 말로 다 담기 힘든 사연들을 뒤로 하고 꿋꿋이 원칙대로 원작 못지않은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역자들에게 존경의 마음과 힘찬 박수를 보내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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